나는 너를 사랑해, 내 맘 알지?

중2 때부터 지금까지 같이 살아온 우리집 개, 심바.

요크셔테리어 종으로, 올해 여름에 14세가 되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80대 후반 정도의 노인이지만 지금까지 어디 아프거나 다친 곳 없이 건강하게 살아왔다.



14년전 늦은 여름, 손 하나에 올려놓을 수 있을만큼 작은 요크셔테리어 강아지를 엄마가 집에 데리고 왔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작던 강아지가 쑥쑥 자라서 내 앞에 공을 물어다 놓고 꼬리를 흔들면서 놀자고 조를때, 나는 한창 수능 공부에 잔뜩 스트레스를 받던 때라 그저 귀찮기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팔팔하고 건강하던 녀석이 나이를 먹어 그 윤기나고 예쁘던 털이 회색으로 변하고 윤기없이 푸석푸석해지고, 이빨도 다 빠져 개껌은 커녕 사료 먹기도 버거워하는걸 보면 마음이 아파온다. 옛날에 더 많이 놀아줄껄... 지금은 내가 놀자고 장난을 걸어도 기운이 없으니 예전처럼 폴짝폴짝 뛰기는 커녕 발 몇번 움직이다 금방 지쳐버리곤 해서 안쓰럽다.



심바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기 전에 진지한 대화를 시도해보고 싶어서 신청한 책, '엄마, 내 맘 알지?'.

TV는 안보는 내가 유일하게 보는 프로그램이 일요일 아침에 방송되는 '동물농장'이다. 거기에 출연했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의 스승이 썼다고 하니 흥미가 동해 신청했는데, 운 좋게 당첨되어 책을 받게 되었다. 나도 하이디처럼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는건가! 하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근무하는 회사가 멀어서 평일에는 회사 기숙사에 있다가 주말에 집에 간다.
9시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심바~ 누나 왔다~'하고 부르는데 이 녀석 낌새가 영 이상하다. 평소같으면 귀내리고 꼬리치면서 내 손을 핥으며 반가워해 주는 녀석이 내 눈을 가만히 쳐다보고 귀만 내릴 뿐 평소처럼 반겨주지 않는다.

옷을 갈아입고 배송된 책의 포장을 뜯어 책을 펼치는데, 이 녀석이 내 옆에 앉아 자꾸 자기 성기를 핥는다.
수컷들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라 '하지마!'하고 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어릴 때 중성화 수술를 하긴 했지만 가끔 그런적이 있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 녀석이 내 무릎에 앉아 자꾸 몸을 틀어 내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맞춘다.

내려달라는건가? 하고 내려놓으려는데... 잠옷 바지에 뭔가 묻은게 보였다.
뭐지? 하고 보니 뭔가 누런 고름 같다.

설마..하고 심바를 들어 핥던 곳을 보니... 성기에서 고름이 나오고 있다.

놀라서 요오드 소독액과 솜을 가져다가 닦아주는데 계속 고름이 나오면서 멈추질 않는다. 이거 이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싶어 동생에게 전화를 해 빨리 퇴근하라고 재촉했다.

11시가 다 되어 동생이 집에 왔다. 난 그 사이에 단골 동물병원에 전화해서 수의사에게 24시간 하는 동물 병원을 소개받고 위치를 알아두고 있다가 동생이 오자마자 심바를 데리고 동생과 함께 병원에 갔다.

초음파 검사, 혈액 검사, 소변 검사... 2시간 정도 걸린 검사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1시가 넘어 수의사가 날 불렀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수의사가 물었다.

"심바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거 같아요?"

순간 눈물이 쏟아지며 울컥 했지만 애써 눈물을 참고 쿨한 척 대답했다.

"사실 지금 죽어도 이상한 나이는 아니죠"



성기에서 나온 고름 때문에 병원에 왔지만, 사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당뇨병...

사람만 걸리는게 아니라 개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다양한 노인성 질환을 겪게 되는데, 우리 심바는 당뇨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개들에 비해 이빨도 일찍 빠지고, 눈에 백내장도 생기고, 신장도 좋지 않아 방광염이 생겨 고름이 나왔던 것이다.

지금 탈수 증상이 있으니 하루 입원 시키면서 링거 맞추라고 수의사가 권유했지만, 차마 낯선 곳에 하룻밤 내내 둘 수가 없어서 방광세척만 하고 집에 데리고 왔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대충 챙겨입고 집 앞에 있는 동물 병원에 갔다.

링거 맞추려면 주사 바늘을 꽂아야 하는데 이 녀석이 수의사의 손을 피해 자꾸 내 품으로 파고든다. 안되겠다 싶어 오후에 연락달라고 하고 입원을 시키고 병원을 나왔다.

집에 와서 '엄마 내 맘알지?'를 읽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어제 자꾸 나하고 눈을 맞추던게 아프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랬구나 싶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좀 더 빨리 알아차렸으면 괴로운 시간을 1분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텐데... 나에게 보낸 텔레파시를 일찍 알아채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다.




비록 내가 하이디나 이 책의 저자 아멜리아처럼 동물과 대화를 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 나온 것처럼 동물에게 열린 마음으로 대한다면 적어도 내가 기르는 개가 나에게 뭔가 말하고 싶어하는구나 정도는 알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일 때문에 다시 집을 떠나 회사에 와 있지만, 이번 주말에 집에 가면 심바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너 당뇨병이래. 그래서 인슐린을 맞아야 오래 살 수 있다는데, 하루에 두번씩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는건 너무 힘들지 않겠니?
2.6kg에 불과한 니 몸 어디에 그렇게 수십, 수백군데 주사바늘을 찔러댈 곳이 있다고... 그냥 식이조절만 하면서 맘 편하게 남은 여생을 보내는게 좋지 않을까? "


심바가 뭐라고 할까? 내 생각을 이해해 줄까?

금요일에 다시 집에 가기 전까지 책을 한번 더 읽으면서 대화할 준비를 해야겠다.



심바, 나는 너를 사랑해. 내 맘 알지?



렛츠리뷰

by 세시링 | 2009/10/26 15:40 | My Life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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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10/26 15: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orangetv at 2009/10/27 00:18
괜히 읽다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얼른 추스렸어요 ㅠ_-
심바는 이미 다 알고, 다 이해하고 있을거에요.
건강하게 남은 시간동안 가족들과 행복하기를 기원할게요



Commented by 깊은호수 at 2009/10/27 05:23
안타깝군요 앞으로 얼마 남지안은시간 잘 대해주시고 사랑을 듬뿍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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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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